여행의 이유 | 김영하

 

약상자에는 없는 치료제가 여행이다. 여행은 모든 세대를 통틀어 가장 잘 알려진 예방약이자 치료제이며 동시에 회복이다. _대니얼 트레이크

 

여행처럼 신선하고 여행처럼 설례임을 주는 감정은 별로 없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새것들이다. 새것들이니 호기심이 일어나고 호기심을 갖고 보니 무슨 감상이고 생각들이 두리둥실 떠다닌다. 이 객지에서 얻은 감상을 쓰는 것이 바로 기행문이다. 객지에서 얻은 감상. 작가는 고스란히 이 감상의 기행문을 일기의 형식을 빌어 산문으로 저장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일기란 무엇인가?  그날 하루의 중요한 견문, 여행의 풍경, 감상, 사색 들의 사생활을 적는 은밀한 글이다.

누구나 ‘그 날’이 있고 ‘그날’ 하루의 생활이 있다. ‘그날’은 자기 일생의 하루요, ‘그날’ 하루의 생활은 자기 전 생명의 한토막이다. ‘그날’이란 언제 어느 날이든 자기에게 의의가 있다. 

 

작가는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소한 여행의 에피소드와 감상들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으리라 추측해본다. 여행 중 현실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관찰력과 사고력이 예리해 졌고, 보고들은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을 취하면서도, 작은 사물도 치밀하게 관찰하는 습성도 가진것이다. 어림잡아 작가는 여행지에선 현재에 대한 집중을, 돌아와서는 그 때를 복귀하며 관찰과 생각을 치밀하게 조합하여 언어로 그려냈다. 그런면에서 김영하라는 작가는 휼륭한 인생자습을 여행을 통해 이룰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 표지 하단에 있는 문구가("이 책을 쓰는데 내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작가가 이야기하는 여행의 이유는 두 가지로 축약 될 수 있다. 

 

먼저 호텔에 대한 정의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_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 데이비드 실즈 가 말한 내용을 인용하며 실존적 삶의 문제들로 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때 이국적 호텔이라는 장소의 매개체에서  매일매일 침대쉬트가  리셋되는 것처럼 삶도 리셋되는 기분을 만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외출을 하고 다시 들어올땐 언제나 말끔히 청소되어 있는 호텔이라는 장소. 전날의 기억을 집요하게 지우는 장소이자 삼십육계 패전계를 이용한 일시적 도피라는 계책을 도모할 수 있는 장소. 보이지 않는 적과 다시 맛설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필요할때 그가 택한 방법은 바로 낮선 여행지의 호텔이였다.

 

두번째 이유는 오직 현재에 집중하며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시나요? 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한번쯤 받아본 질문이라고 했다.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직업적인 책무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것도 생각할 수 없을때 마침내 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_ p 105  라고 기술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그것이 오직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는것이 유일하게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_109 page 

 

다시 말한다. 그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적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여행이라는 현실도피라는 방법을 통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들이 있었고 그러한  길 위의 날들이  있었기에 후에  영감이 생겨날 수 있었고 그러한 영감을  토대로 소설에 매진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가 여행을 바라보며 관통하는 본 한 마디의 문장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이다._김영하".

 

그가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상탈출이였고,오롯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의 여행은 6년전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여름. 일본 오사카를 시작으로 우리가족의 자유여행은 스타트를 끊었다. 김병률작가의 말처럼 ‘가슴에 명장면 한편을 남기려고’ 시작했던 3박4일의 가족여행은 짧았지만 오롯이 추억을 공유할수 있는 시간이 되어 주었고 그 여행이 있었기에 미국서부 자동차여행의 훌륭한 자신감이 되어주었다. 미국여행은 또다시 2년뒤 파리여행의 든든한 경험이 되어주었고 작년에 다녀온 독일 소도시 랜트카 여행으로 이어지는 가족베낭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완전히 없애는 선험적인 경험이 되어준 추억이었다.  잊지못할 일들의 특별한 이밴트보다 장면장면 마다 어떤 애피소드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때 '혼자만의 기억이 아닌 추억의 공유' 라는 함께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리는 언제든 그 애피소드를 소환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그 때의 일들을 기억한다.  그런면에서 신영복 선생의 '담론' 이라는 책에 언급된 추억의 정의가 사뭇 와 닿는다.

 

우리가 작은 추억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추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뜻밖의 밤길에서 만나 다정한 길동무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추억이라도 늘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누군가 나에게 여행의 이유를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가족과의 아름다운 추억의 공유를 위해 떠날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끝으로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세 가지 정도 될 것 같다. 

 


아내와 아이들을 원데이 또는 투데이 클래스로 이름하여 "가족을 위해 아빠가기획한 여행투어" 라는 네이밍으로 아이들과 아내를 집밖으로 보내자. 오롯히 나만의 집에서 2박3일 호캉스를 즐기는 방법. 머리를 짜내야 한다!!

 

일본은 자국 국내여행이 무척이나 활성화 된 곳이다. 자국 인바운드 여행플랫폼이 잘되어있다는건 어느곳을 가나 편안한 숙소와 먹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그에비해 한국은 인바운드 여행이 여전히 미숙하다. 특정지역 특정장소 한 곳을 가보고 싶은데는 있으나 그 장소에서 숙식까지 해결하기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그렇다고 국내여행을 마냥 안할수는 없지 않은가. 예를들어 49만원 으로 2박3일 여행 다녀올 만한 데가 있을까? 대전에 있는 한적한 도예촌에서 도자기 체험을 하고 책 하나 달랑들고 전망좋은 카페에서 호사스럽게 책을 읽은 후 저녁 먹거리겸 두고두고 냉장고에 재여놓고 먹을 현지음식을 장만 후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다면  여행의 이유는 충분하리라. 물론 그런 곳을 많이 알아두는게 바로 여행의 이유 아닐까?

 

 

 

 

 

또한 작가가 경험한 책에서 나온 JTBC '알쓸신잡' 프로그램 처럼 국내 소도시 여행을 PD 가 되어 지인들과 해볼 수 있는 곳을 나름대로 기획해 볼만하다. 여행플랜이 완성되면 여행의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_파울로 코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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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gkim's
작성일
2020. 7. 30. 13:45